부클레, 모라산 묘실 신축으로 라틴아메리카 정치 유해 전통 부활…권위주의를 중미에 투사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대통령 나이브 부클레가 산살바도르에서 19세기 중미 통일 운동의 핵심 인물인 프란시스코 모라산의 묘실을 새로 건립하고, "칼을 쥐고 있는" 자세로 이 묘실을 개인 권력의 상징으로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보도는 부클레가 이 공사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유해 발굴" 전통을 되살리고, 개인 권위주의를 엘살바도르에서 중미 전역으로 확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대통령 나이브 부클레가 최근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19세기 중미 연방 공화국의 핵심 인물인 프란시스코 모라산의 묘실을 새로 건립했다. 보도는 한 엘살바도르 근위대 병사가 이 새 묘실 안에 상주하며, 이곳을 역사 기념 공간에서 국가 의식 현장으로 전환했다고 묘사했다.
《뉴욕타임스》는 부클레의 이 공사를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유해 발굴" 전통의 부활로 규정했다. 즉, 통치자가 역사 인물의 유해를 발굴·이장 또는 재정비하여 국가 서사와 개인 권위를 재구성하는 정치적 행위를 말한다. 해당 보도의 시각과 상징적 틀 속에서 "칼을 쥐고 있는" 자세는 모라산의 역사 초상화에 등장하는 고전적 요소이면서 동시에 부클레가 자신의 강자적 자세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모라산은 온두라스에서 출생했으며, 중미 연방 공화국 대통령을 지냈고,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국가 원수를 여러 차례 역임한 19세기 중미 정치 통합의 핵심 인물로, 1842년 코스타리카에서 사망했다. 중미 지역의 역사적 기억 속에서 그는 오랫동안 단일 민족국가의 경계를 초월하는 정치적 상징으로 간주되어 왔다.
보도에 따르면, 모라산을 핵심으로 한 부클레의 묘실 공사의 정치적 의미는 엘살바도르의 국경을 넘어선다. 국경을 초월한 중미의 선현 이미지를 활용하여 엘살바도르 수도를 중미 전체의 "정치적 정신적 중심지"로 만들고, 이를 통해 중미 통합 서사 속에서의 주도적 지위를 공고히 한다는 것이다. 새 묘실은 이로써 부클레의 권력을 중미 전역에 투사하는 도구가 된다.
지적할 만한 점은, 모라산 본인이 대표했던 가치가 바로 지방 카우디요식 강자 정치에 반대하고 입헌적 연방을 추진한 중미 연방주의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부클레가 국가 원수 신분으로 모라산 이미지에 대한 정치적 해석권을 독점하고, 군사 의장대를 묘실에 상주시킨 것은 모라산이 추구했던 입헌 공화정 정신과 현저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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